상당히 깁니다.
점심시간 눈꺼풀이 내려앉을때 읽어보세요.^^
심봉사 눈 뜨듯 똘망똘망해질 텐데…!!!
오늘에서야 모든 처리를 마치고 집을 내놓았습니다.

낙찰받은 아파트는 준공 3년차, 임차인이 있고, 그는 무려 2억원을 못 받아가는(대항력X) 상황입니다.

2월 25일 낙찰을 받았습니다. 저는 출장중이라 아내가 대신 가서 낙찰받아왔습니다. 자기가 가면 낙찰된다고 아주 기고만장합니다.


2월 26일

혹시 임차인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해서 관리사무소에 전화했습니다. 절대 안 가르쳐줍니다. 임차인에게 연락처는 알려준다는데, 뭐 그런다고 전화가 올까요?

2월 27일

오후에 아파트를 찾아갔습니다. 매각허가결정까지 기다린다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성격상 못 기다립니다. 임차인이 누구인지, 어떤 성향인지, 뭘 바라는지 너무너무 궁금하거든요. 혹시 아나요, 빨리 나간다고 할지?
아파트에 도착해서 세대호출을 눌렀지만 답이 없네요. 그러다 공동현관으로 나오는 사람을 보고 쏘옥~ 들어갔습니다. 우편함을 보고 ‘살고있음’을 확인하고 8층으로 이동. 엘리베이터가…제가 본 아파트 엘리베이터 중 가장 좋습니다. 바닥이 대리석이에요!!

혹시나 해서 초인종도 누르고 문도 두드려봤습니다. 진짜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포스트잇으로 연락처만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부동산에 가봤더니 물건 잘 받았다고 칭찬하십니다. 200만원 차이로 2등한 분들이 그 동네 부동산 사장님들로 구성된 드림팀이었거든요.

저녁 무렵 다시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습니다. 30분쯤 지났을까.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다음에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멈춰라 멈춰라’ 올라가지 마라!!! 띵~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췄습니다.

아…”어르신 여기 사세요?”

할머니와 자식내외.(40대쯤?) 남자분만 남고 두 분은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낙찰자 대리인 박대리입니다.” 주저리 주저리 쏼라 쏼라~~ 임차인은 왜 벌써 왔냐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님이 이 집을 계약을 하셨고, 현재 등재된 임차인은 어머님!

“나는 일본에 사는데, 아버님이 나도 모르게 아파트를 계약하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정리하려고 잠깐 들어왔다. 협의할게 있으면 연세 있는 어머니 말고 나랑 하자. 다른 형제들과는 사이가 안 좋으니 나랑 협의되지 않으면 곤란할거다.”

협의만 잘 되면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면서 이사비 500만원을 내일 줬으면 좋겠답니다. 으잉 그런게 어딨어? 안되는디… 의중은 알았으니 낙찰자에게 말씀드리고 내일 얘기 하자며 오전 11시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돈은 다 줄 수 없고, 하기에 따라 협의가 될 것 같으니 열심히 협의서를 수정했습니다. 일단 반 주고, 나머지는 이사 당일에 주는데 안주면 법적절차 어쩌고 저쩌고~

2월 28일

문자를 보내니 전화가 옵니다

처음부터 이사비용을 모두 달라고 했으니까…선약금으로 200만원과 명도 완료시 나머지 잔금을 주는 조건으로 협의서를 준비했고, 이와 관련해 어머님 도장과 인감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집 앞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키햐…벤츠 타고 옵니다.
협상을 시작하려는데 빈손입니다. 이상하다? 증명서 같은게 손에 없네? 몇 마디 하더니 명함을 달라고 합니다. 여차저차해 없다고 하니 이럽니다.

임차인 : 제가 아는 사무소도 서초동에 있는데 대리님도 사무실이 서초동이라고 하셨죠? 그곳에서 어떻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감증명을 주냐고…”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가능한 부드럽게 진행하기 위해 존대하며 진행하고 있었고, 서로 신뢰하며 내 일이 아니니 깔끔하게 처리하자는 분위기였는데 제가 낙찰자 남편이라는걸 들키면…눈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위기를 모면하려 이런저런 협상 관련된 것만 얘기했습니다. 일단은 더 이상 그 부분은 물어 보지 않습니다. 협의사항에 대해서만 더 설명하고 일반적인 오해와 절차를 열심히 설명 하고. 아휴… 이미 이때부터 심리적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협의서를 보면서 이런 저런 말이 많습니다. 약간 힘주기 위해 민형사상 의무를 들먹이고 그랬는데

임차인 : 이 부분은 지워 주세요. 이건 협상이 아니라 협박 같잖아요. 그리고 이번에 집이 이렇게 되고 나니 이런 부분에 민감해서요.

이사비를 500을 주셨으면 말씀 드렸었는데 낙찰자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저도 어머님을 대신해서 하는건데 300정도 가지고는 이사 빨리 하라고 어머님 설득 못하고 여러가지로 어렵습니다. 나올때도 어머님이 저를 잡고 우세요. 저랑 해결 할 수 있을 때 빨리 합시다!!!

(이 사람도 자신의 요구를 어머님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합니다.)

저는 그렇게 줄 수 없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사를 빨리만 해주면 조금 더 고려해볼 수 있다고 얘기를 하다 약간의 소강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나 : 300 이상은 안됩니다. 이유는 설명 드렸고요. 다만 이사를 빨리 나가주시면 50만원 정도는 더 드릴수 있습니…

임차인 : 그렇게는 안됩니다.
나 : 낙찰자에게 최대 400이라는 허락은 받고 왔습니…
임차인 : 난 500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400정도 생각했는데. 낙찰자가 400이라고 했고 난 500이라고 했으니 450으로 합시다.

나 : (이런~) 절대 안됩니다. 400으로 하시죠. 제가 더는 낙찰자를 설득할 구실이 없습니다. 술값으로 100만원은 쓸 수 있지만 지나가던 누가 만원만 달라면 안줄거지 않습니까?

임차인 : 이사비는 이사 당일 받는 것으로 하고, 관리비도 모두 정산하기로 했는데 50만원(450만원) 가지고 협의가 안된다면 더이상 이야기가 의미 없겠네요.

당했다, 당했어. 완벽히 졌습니다. 조금 더 낮은 가격을 고수했어야 했습니다. 강약 중간약. 완급조절에 실패했습니다. 혼자 속으로 너무 쫄았던 것이 실패 요인이었습니다.

대신 그렇게 전하려면 저도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계속 하니 그럼 자기가 출국하기 전(다음주 주말)에도 가능하면 이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달랍니다. 다음 약속은 제가 다시 출장을 가야해서 다음 주 화요일 경락허가 결정이 나는 날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우째쓰까… 집으로 돌아와 등산하며 고민을 하다가 일찍 비워주면 그만큼의 이자와 시간적 기회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보다 50더 주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3월 1일

임차인에게 전화했습니다.

나 : 저에 대해 걱정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 이런 상황을 낙찰자님께 말씀드리니 그럼 직접 뵙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낙찰자를 만나시려면 월요일에 보시고, 저를 만나시려면 화요일에 약속대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임차인 : 집을 빼앗기는 입장에서 빼앗아가는 사람을 보기 싫으니 화요일에 봅시다.

작전성공!! 마음이 많이 편해집니다.

3월 4일

협의서만 작성하면 되니 법원 앞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서류를 가져갔지만 쓰지 않았습니다. 다시 신뢰하자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고, 약속만 잘 지키면 협의서가 무슨… 오늘이 매각허가 결정일이니 안 쓴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람도 이왕 자기가 출국하기 전에 처리를 끝내잡니다. 가능하다면 자기도 이사하는걸 보고 가고 싶다며 내일이라도 비워준답니다. 쿨 하게 그러자고, 이런거 쓰지 말고 내일 뵙자면서 웃으며 빠이빠이 했습니다.

3월 5일

임차인 : 이사했습니다. 이사는 완료했는데 지금 당장 볼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밖에서 보면 안될까요? 지금 이사한 집 가서 이사 짐도 좀 옮겨야 하고 다른 약속도 시내 쪽에 있어서 시내에서 보면 안될까요?

나 : 안됩니다. 님은 믿지만 하도 이상한 경우가 많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임차인 : 제가 집도 다 비웠고 이사도 말끔히 했어요. 사진도 찍었고요. 믿어주세요.

일단은 조금 바빠서 일 마치는 대로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약속시간은 정해져있지만 임차인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미안하고 조급해졌습니다. 사진도 찍었으니 너무 그러지 말잡니다. 에잇 파손여부 관련해서 강하게 이야기했으니 그럼 그냥 시내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가는 길에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니 ‘이사한다는 말은 없었고 3월 2일 부분 이사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암튼 오늘 이사한다는 말은 없었다’고 합니다. 관리비는 모두 정산 하긴 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은 2월 관리비 50만원이 남았다고 하더라고.

이사비에서 50만원은 빼야겠고, 일부러 짐을 조금 남겨둔건가? 이미 이사계획을 잡고 있던 건가???

(첫 번째 명도 당시 임차인은 이미 이사를 다 했고 이사비 받으려고 이불과 간단한 가재도구만 남겨뒀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이사 당일 집을 보여 주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시내 카페에 가니 와이프와 함께였습니다. 이상하데요. 와이프를 보니 믿음이 가더군요. 저라면 옆에 와이프를 두고 치사한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았고 앉자마자 와이프를 시켜서 커피를 사주더군요.

찍어온 사진과 각종 집 관련 열쇠와 키들, 확실히 집은 비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비를 주었습니다. 관리비도 2월분은 공제 하겠다 하니 쿨하게 그러라네요. 나름 화기 애매~한 분위기로 서로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작별했습니다.

3월 6일

다음날, 집에 찾아갔는데 카드키가 안됩니다. 전화를 했더니 비번을 알려주며 자기는 이제 출국해서 전화를 못 받는답니다. 작별인사 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이렇게 문에 테이프가…이거 뭐지?

뜯어서 열어보니 속이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경첩이 고장나서 이렇게 해둔건가? 그런데 옆에도 보니 허전합니다.

한참을 생각하는데 다른 층을 한번 봤던 기억이 납니다. 아놔 광파오븐이랑 서브냉장고 떼어갔습니다.ㅋㅋㅋㅋㅋㅋ

그 순간 모든 시나리오가 맞춰집니다. 협상하면서 다른 증명서를 안 만들려고 한 것과 명함을 주지 않았고, 일본으로 간다는 것 등등… 아! 뒤통수 맞은 느낌?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 하루종일 웃음이 납니다. 저는 성선설을 믿는데 사람 사는게 나와 같지 않네요. ㅎㅎ

일본에서 회사 사장님이고, 어머님도 상가를 갖고 계시다면서 저걸 떼어 가져갔습니다. 부수기라도 한다면 이해하겠지만, 아니 저걸 왜. (여러분 책과 전문가들이 말하는 원칙대로 움직이세요)

소심한 복수를 해야겠습니다. 향후 임차인의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내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쉽게 물러나면 안되겠기도 하고, 공부도 좀 해볼겸…

그리고 두 가전제품 합쳐 130만원에 새것을 주문했습니다.

작은방 구석 결로로 인한 도배 25만원도 추가. 수업료 한번 비쌉니다.



3월 7일

아침에 와이프와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무이랑 집에 갔습니다. 하루에 청소를 다 하기는 힘들어, 반 정도만 하다가 일단 부동산에 들러 집을 내놨습니다.

바로 연락이 오기에 깔끔하게 보여주겠다고 내일 오후부터 들리라고 했습니다.

3월 8일

오전에 어머님 공항 모셔 드리고 오븐이랑 냉장고 수령했습니다.

오늘은 행크 수업 있는 날, 오전에 예습하고 오후는 수업을 열심히 듣습니다.

3월 9일

오전에 가서 오븐이랑 냉장고 설치 기사분 오셔서 설치. 와이프는 청소하고 애들은 신나게 놀고 집이 너무 좋답니다. 아주 난리가 납니다. 안방 목욕탕에서 목욕도 하고 피자도 시켜먹고ㅋㅋㅋ

저는 또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근무라서 일하러 고고씽

3월 10일

마지막 정리를 하고 도배도 끝. 최종 청소를 싸악 하고 들어오는 출입구와 방에 방향제랑 슬리퍼 구비(방향제는 들어오면서 향긋한 냄새를 맡으면 무의식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라는~)

부동산 업자를 불러 집을 보여줬습니다.

부동산 : 새집같네요. 물건 상태 좋은데요~!!!!

나 : 작은방도 좀 지저분한 것 같아서 도배 했고요, 오븐이랑 작은 냉장고도 일부러 새것으로 바꿨습니다!

부동산 : 어머 가격을 올려 받아야 겠는데요~

나 : 홍홍홍~ 그러면 좋죠 ㅎㅎㅎㅎ

어찌됐든 이 물건은 이제 매도만 남았습니다. 생각보다 막상 들어가 보니 전망도 좋고 물건 상태도 좋고 다른 부동산들도 모두 호의적이라 다행입니다.








마치며~

진행 과정에서 행크분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순간순간 답답하고 힘이 들 때 한마디씩 해주신 위로와 방법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 단순히 보증금을 전부 못 받는 임차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경우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첫 번째 명도했던 사람도 1억8500만원 못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도 잔금 납부 전에 명도 완료 했어요.)

2. 책과 전문가의 원칙을 절대적으로 따를 것. 글로 읽고 단순히 안다고 해서 현실에서 그대로 쓰기에는 아직 너무 나도 많이 부족하구나.

3. 사람을 믿지 말 것. 가능한 임차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다 협상도 지고 명도에서도 한방 먹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얼굴 붉히지 않고 진행했지만, 정말 저의 마지노선을 고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4. 개인 투자자로 해서 명함 하나 만들었습니다. 잔머리 굴린 것이 독이었네요.

항상 생각합니다…

“신중함과 과감함이 중용을 이룰 때.!!”

위 경험담은 다음 ‘행복재테크’ 카페
2014년 3월 게재된 ‘파이팅팔콘’님의
‘초단명도기(2주간의 낙찰에서 물건을 내놓기 까지…)’를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