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낙찰받은 수원 인계동 오피스텔 2개 중 1개 호실 명도 이야기 입니다.

연락처를 쪽지로 남기고 온 며칠 후 새벽 2시에 연락이 왔습니다. 술 취한 목소리로 뭐라 하는데, 정신이 없어 일단 연락을 주겠다고 끊었습니다.

잠이 확 깹니다… 이리 저리 뒤척이며 이 매너 없는 친구를 어떻게 요리할지…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고 오피스텔에 방문했습니다.

전화 목소리 포스가 보통 사람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내부 난방도 안하면서 반팔, 반바지 차림입니다. 옷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그림들이…몸을 도화지로 쓰는 화가더군요. 애써 태연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이런 실전은 첨이라 약간은 당황했습니다.

이 화가는 “자기네가 물건 납품과 공사를 했는데 돈을 못 받았고, 여차저차 유치권을 행사중이다”라고 합니다.

관리비도 250만원 연체중이고, 도시가스도 80여만원 체납. 2등하고 낙찰 금액도 2백만원 이상 차이가 나서 심기가 불편한데, 공용관리비도 최소 1백만원 이상 나와 뚜껑이 열리려는데… 용, 용을 본 순간 전투력이 막 막 하강했습니다.

결론은 “자기네 공사비 1억이상 못 받아 너무 억울해서 관리비, 공과금 못내겠다. 여기에 힘들었으니 위로금 및 이사비로 300만원 달라”

그래서 저도…

“이 오피스텔은 우리 회사 사장님이 자금을 투자하신 거고, 난 명의만 빌려드린 것이고, 화가님께서는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우리 사장님은 경매20년 하신 분으로, 억지 부리는 사람 여럿 학교 보내드리는 거 봤다. 화가님 사정이 참 딱해 보이는데, 이사비라도 좀 받아 보도록 내가 정말로 힘써 보겠다.”

어르고 달래며, 내부 사진을 모조리 찍은 후 일단 철수했습니다. 기분을 맞춰주니 여기저기 안내를 친절히 잘 해줍니다.

이렇게 대책 없는 사람과 이야기기할 때는 송사무장님의 3자 화법이 아주 용이합니다. 송사무장님의 명도의 기술을 몰랐더라면, 좀 고생했을 것 같습니다.

이틀정도 뜸 들인 후, 그간 경험과 강의에서 배운 내용증명 작성법 등을 활용해 2장짜리 내용증명을 발송했습니다. 사진으로 찍어 문자로도 발송해 주었고요. 명함에 있는 메일주소로도 보내주고~


수원이라기에….ㅎㅎ

살짝 긴장하고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이 화가의 주 활동 무대는 인천이고, 유치권을 유지하려고 이 먼 수원까지 왔다갔다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몇년동안이나.

첫 대면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나가는 가운데 상당히 피곤하고 지쳐보였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자니 한편으로는 상당히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공사의 하도급업자로써 다른 몇몇 업자들도 이래저래 미납공사비로 인한 고통이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잠시 제가 낙찰받은 오피스텔의 사정을 보면, 저층 상가는 모두 유찰됐고, 주거용 오피도 2건 유찰 된 상태여서 설령 이번달에 모두 낙찰된다 치더라도 배당기일 및 인도명령까지 기다린다면 하세월이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더군요.

제 입장에선 잔금예정일인 12월 17일 이전에 명도하려고 약간은 욕심을 내 목표를 사전에 세워뒀습니다. 하지만 용을 본 순간부터 목표는 물건너(?) 갈지도 모른다고…

며칠 후 드디어 기다리던 화가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화가 : 이거 뭔 편지라요 ?(한층 격앙되어서…)

나 : 저도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요, 사장님께서 자주 쓰시는 내용이라 출력해서 보내다 보니…

화가 : 지금 협박 허는 거요?

나 : 제가요? 그럴리가요!!! (옆에 있지 않은게 천만다행~)

화가 : (계속 거주시 부당이득금 월세부분에 대해) 뭔 월세를 110만원이나 내라고. 순 도둑놈 심보구만 그 사장 얼굴이나 함 봅시다 !!!

나 : 사장님 보시는건 어려운것 아닌데 저희 입장도 고려를 해 주셔야 되자나요. 화가님이 너무 무리한 요구 하고 계시고, 저희 사장님은 오피스텔이나 원룸 이사비는 30만원 정도 책정하시고 그것도 관리비 다 정산된 상태 확인 후…

화가 : 그럼 공사비 받을 때까지 걍 여기 눌러 살랍니다.

나 : 저희 사장님께서도 계속 계시겠다고 하면 잘 모시라고 하시더라고요. 지난주에도 화가님 같은 분으로부터 소송을 해서 월세 다 받아내셔서, VIP라고 하시던데요~

화가 : ……

나 : 저도 다른 일이 바빠서 화가님께 신경을 자주 못쓸것 같으니 걍 내일까지 계실지 나갈지 확답 주세용.

화가 : (씩씩데는 코소리)…..

나 : (빨리 끊지 않으면 재떨이가 날아올 것 같다) 내일까지 연락 없으면 계속 계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뚝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마터면 핸드폰 떨어트릴 뻔…

물건지 위치한 인계동 분위기…/사진=경인일보(2021년)

한시간쯤 흘렀을까 다시 전화가 왔다.

화가 : (다소 차분해져) 그러지 말고, 잘 좀 해봅시다. 에어컨이나, 냉장고, 세탁기 등 옵션도 내 돈으로 했고, 이 금액만 해도 꽤 되는데.

나 : 그래도 중고라….

화가 : 걍 전자제품들 다 두고 나갈테니, 관리비랑 퉁칩시다. 따로 이사비 달란 말 안할테니.

나 : 우리 사장님이 화 내실것 같은데, 제가 사장님께 말씀드린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전화했다.

나 : 11월 말에 이사를 나가주시겠다면 제안하신 대로 하시겠다는데요 ?

화가 : 마지막주 주말에 이사 나가드리겠습니다.

나 : 제가 힘들게 승인 받은 내용이라, 그 약속 안 지키시면 저 맞는거 보실거에요. 이삿짐 나간 후 도어록 번호만 알려주세요…

사실, 이 화가를 본 후 양보할 마지노선을 이정도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명도가 빠르게 되면, 잔금 전 임대도 가능하다고 판단해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배당시점, 인도 명령까진 2~3달 내에 마무리된다고 보기에 적잖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저층 상가들이 입지가 별로 안좋고 감정가도 높기 때문에…
결국, 화가는 약속을 지켜 이사를 나가 주었습니다. 용의 눈알을 보게 될까 무서워 이사하는 모습은 지켜 볼 수 없었네요~

이사 후 2시간 정도 지나 화가가 머물던 오피스텔을 점령하러 갔고,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도어록 비번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

이렇게 화가 명도 얘기는 끝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향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경우,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위 경험담은 다음 ‘행복재테크’ 카페
2014년 11월 게재된 ‘애들아범’님의
‘살벌한 화가 명도기’ 를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