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행크알리미입니다.

일단 날씨도 멜랑꼴리한데 함께 시를 한편 읽어볼까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 건물 용도가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이곳은 제주 조천읍에 있는 카페입니다. 제주에 살 당시 가장 좋아하던 아지트입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날은 한창 4.3사건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때였습니다. 아마도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배경인 함덕 너븐숭이 4.3기념관을 다녀오던 길로 기억합니다.

제주살이가 얼마 되지 않아 해안도로만 보이면 들어가 차를 세우고 바람을 쐬곤 했는데, 처음 이곳을 보고는 폐건물인줄 알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바닷가에는 이런 곳들이 종종 있어 구경이나 할까 하고 들여다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청소하던 사장님이랑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

“어서오세요~^^”
(아…여기 뭐…파는덴가….?)

어…벙벙벙 하면서 내부로 들어가서는 더 놀랐습니다. 실내 전체를 나무로 둘러싸고, 앉은자리에서 바로 바다가 보이는 독특하고 안정감을 주는 그리고 예쁜 인테리어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에라 여기서 나가면 쪽팔린다’ 생각하고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앉았습니다.


편안하고, 조용하고, 이내 외로워졌습니다. 한동안 멍하다가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며칠간 홀로 목격한 4.3의 흔적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곧 수십가지로 늘어났습니다.

그 이후로 비가 오기 직전이면, 날이 짱짱하면, 눈이 푹푹 나리는 날이면, 그리고 손님이 제주를 찾을 때마다 그곳에 들렀습니다. 매일 다른 얼굴의 바다처럼, 사회에 뛰어든지 몇 년 새 너무나도 달라진 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백석이 스물일곱에 쓴 글을 서른 넘어 홀리듯 받아들였습니다. 행크알리미의 지금 모습과 비교하면 참 세상물정 모르고 낭만 찾고 있었지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제게는 나타샤가 없었기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 섬에서의 날들과, 자유와, 그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카페를 그리워하며 또다른 카페에서 하루종일 살고 있습니다.


제주를 여행하는 목적은 휴식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사업, 창업, 부동산 관련 글은 더욱 신중하게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육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문화·관광 요인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카페들의 장단점과 사업적 가치, 매출 증대방안에 대해서도 오래 찾아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곳 카페는 썩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멀지 않은 함덕서우봉에 델문도가 있고, 수년 전 백사장 모래를 옮겨와 발리 콘셉트로 오픈한 그레이밤부도 있고, 최근엔 고작 700m 거리에 런던베이글 제주점도 오픈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을 함께 찾았던 지인들은 가끔씩 제주에 갈 때마다 이곳 카페 이름을 물어봅니다. 아주 맑은 날보다는 약간 흐린 날에 찾은 이들이 그렇습니다. 잠깐이지만 그곳에서 느끼고 말했던 감정과 생각들이 한번씩 떠오른다고 합니다.

글쎄요, 아마도 그건 정체성 덕분 아닐까요.

장사는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수요와 예측, 킬러콘텐츠, 마케팅, 투자금 등 수많은 조건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져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아니고서야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처럼 감성적인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아 이름을 정하고 사업장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면 험난한 경쟁 속에서도 충분히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가치를 읽는 사람들은 단순히 스쳐가는 장소로 생각하지 않고 애정하게 됩니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도 그렇잖아요.





안 망하는게 이상해보이던 이 카페는 하나씩 하나씩 덧칠(?)도 하고, 데크도 만들고, 루프탑도 만들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요즘엔 SNS 타고 찾는 분들이 부쩍 늘었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곳을 「공장 투자 이렇게 쉬웠어?」서평 이벤트 ‘제주임장’의 코스로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타인을 대상으로 무엇을 판다는 것은 수익만큼이나 ‘무엇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동산이든, 창업이든. 아니 적어도 제주에서만큼은요.

빽빽한 일정이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즐겁다는 회원 여러분들의 말씀에 3일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참 즐거웠습니다. 끝까지 행복한 시간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 카페의 이름은 [바람벽에 흰 당나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