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축하해
딸에게 쓰는 편지
지아야,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논문을 통과하고 이렇게 정상적(?)으로 졸업을 하게 된 점 다시 한번 축하한다. 참으로 너에게 할 말은 많지만 또 길어지면 그게 잔소리일 터이니 오늘은 좀 생략하기로 한다.

우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할머니 살아계실 때도 그렇고 그래서 할머니와 더 친하니 할머니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딸인 엄마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던 네가 부럽기도 하고 때론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언제나 방글방글 잘 웃고 인사성이 많은 너는 아파트를 이사할 적마다 경비 아저씨들이 서운해하는 1호 대상이기도 했다. 늘 엄마는 경비실을 무심하듯 목례 정도로 하고 다녀서 어떤 아저씨가 누구인지 또 어떻게 생긴 아저씨가 바뀌었는지조차 몰랐지만 너는 모든 아저씨들을 꿰뚫고 심지어 어디 사는지조차 다 알고 할머니와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 주곤 했지. 그래서 그랬던가 경비 아저씨들은 엄마는 몰라도 너는 다 알아서 가끔 사탕이나 초콜릿을 얻어왔던 기억이 나는구나.

너에겐 참 고마운 게 많다.
그런데도 어미의 성격 탓에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늘 후회스럽고 미안하다.

엄마가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1년을 넘게 받을 때 네 나이는 고작 열세 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일과 병원을 오가며 엄마의 병문안과 치닥꺼리를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것을 다 했을까에 대한 짠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이 섞여서 눈물이 나는구나.

어디 그뿐이겠니?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아픈 것은 아픈 거고, 치료는 치료인 것이지만 우리에겐 생계가 급급했다. 우연히 알게 된 경매를 알게 되면서부터 엄마는 ‘이거다’ 싶었다.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길뿐이라고. 어리긴 했지만 너희들에게 동의조차 구하지 않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를 팔고 오래된 빌라로 이사 오면서 너희들에게 가장 미안했지만 엄마조차도 깜짝 놀라긴 했었다. 밤마다 벽지 사이로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소리와 쿰쿰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옆집의 소음들이 말은 너희들에게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조금만 참으면 이사를 갈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어쩜 그곳을 가장 탈출하고 싶었던 사람은 엄마였다고 고백한다.

지아야, 다시 한번 축하한다.
이렇게 최연소로 석사를 딴 것도 기특하고 대견하다. 중간에 휴학 없이 논스톱으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엄마의 으름장도 한몫하긴 했지만 엄마와 관련된 전공을 선택한 것도 고맙고 미안하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더라.
부모가 자식한테 나쁜 것을 물려주기 싫은 것처럼 엄마가 이 시장에서 10년을 넘게 있어보니 많은 것들이 보이더라. 그래서 힘은 들겠지만 좋은 점이 더 많기에 이와 관련된 일을 너도 해 주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다. 이해해 주렴.

이번 졸업과 최근 너의 생일로 엄마는 너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뭐냐고?
뭐긴, 엄마가 제일 잘 하는 것이 부동산이니 집 한 채를 너에게 줄 생각이다. 자금의 마련은 이렇게 준비했다. 미성년 시절에 2천만 원 증여, 작년에 5천만 원 증여. 합법적으로 비과세 증여에 속한다. 그래서 너의 종잣돈은 7천만 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너에게 작은 씨드가 될 수 있는 부동산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재개발이 움직이는 지역의 오래된 빌라를 계약한 것이다. 서프라이즈 하지 않니? 아니면 너무 엄마다운 발상이었나? ㅎㅎ

아직도 엄마 눈에는 너희들이 아이 같고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이젠 말맛 따나 성인이니 각자의 삶을 만들어 가기 바란다. 지독히 가난했던 엄마의 젊은 시절을 너희가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풍족해서 남을 배려하지 않고 오만한 생각들이 곁들여질까 봐 그 역시도 걱정이다.

지아야,
네 이름의 뜻대로 지혜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한다. 분명 너는 그렇게 살 아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귀염둥이 딸로, 때로는 응석받이로 늘 옆에 있어 준 네게 고마움을 전한다. 너 없으면 엄마가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 마음이다. 늘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주렴.
너의 앞 날을 엄마가 응원한다.
다시 한번 고맙고 축하한다. ^^

– 사랑하는 엄마가 –


딸아이는 중1부터 현장을 따라다니며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