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논현동 하면 무엇부터 떠오르시나요.
백종원거리? 영동시장? 가구거리? 그 외엔… 딱히 생각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백종원거리(구 한신포차), 영동시장, 가구거리
사실 논현동은 뚜렷한 목적 없이 머물 이유가 없는 동네입니다.
고속터미널, 신사, 압구정, 청담, 삼성, 강남역까지 가는 길에 불과합니다. 인천과 서울 사이 고속도로에서 표지판으로만 만나는 부천처럼요.
이 점은 강남개발과 고착과정에서 논현동을 부촌 또는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거주하는 개미굴이라는 이중적인 얼굴을 만들어 왔습니다.
부촌과 빌라촌이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은근 흥미롭지 않나요. 그래서 논현동은 강남 이야기의 끝이 보일 시점에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강남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논현동.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는다면 바로 임장할 수 있도록 쉽게 알려드리겠니다.
시작는 평범했다. 논이었으니까~
논현이라는 지명은 쉽게 ‘논이 많은 고개’라서 논고개로 부른 것이 한자로 ‘논현(論峴)’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구 외에도 인천 남동구에 있죠.
논현동에 포함된 학동은 예상하셨겠지만 ‘학처럼 생긴 동네’라서, 지하철역 이름인 언주는 과거 강남구 일대가 광주군 언주면이었기 때문이랍니다. 다들 조금 싱겁죠.
1970년대 논현동 / 사진=강남구청
논현동은 전체적으로 완만한 고개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꼭대기는 논현동 성당이고요. 이 언덕으로 인해 강남개발과정에서 논현동은 아파트 대신 주택 밀집구역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간단하게 테헤란로를 둘러싼 역삼 삼성 대치(구마을) 청담 논현 등 꾸준히 사람이 살던 언덕에는 주택을, 압구정 반포 대치 개포 등 한강이나 양재천을 메운 평탄한 지역은 아파트단지를 건설했다고 보면 됩니다.
어허~ 그런데 말입니다.
강남에서 가장 먼저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이 논현동이랍니다.
1971년 영동공무원아파트
정부는 1971년 논현동에 12평 15평으로 구성된 소형아파트 12동 360여 가구를 지었는데요. 원래 일반분양 하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무주택자였던 서울시와 교육위원회, 서울시경 직원들 중 희망자에게 분양했습니다.
매년 초가지붕 갈던 시대에 아파트라니! 근데 그럼 뭐해요 주변이 맨 황무지인데.
도대체 기반시설이라는 게 하나도 없고, 출근하려면 한강과 남산까지 넘어야 하는데 버틸 공무원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팔고 다시 강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팔고 떠난 분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강남개발에는 영화 처럼 투기세력이 붙어 난리나기도 하고, 석유파동까지 겹치면서 공사들이 줄줄이 스톱되기도 했거든요.
영동시영주택단지
하지만 그들은 한가지를 간과했습니다. 군사정권 시대라는 것을요.
정부는 방치된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고, 체비지(남겨둔 땅)를 적극적으로 매각하는 등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주면서 사업성을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1975년 한강 이북의 택지개발(아파트, 백화점, 학교)을 금지하고, 이후 주요 관공서와 금융기관 명문고의 이전계획을 세우고 빠르게 실행했습니다. 물론 법률기관과 학교만 이전했지만…
1970년대 논현동 일대 / 사진=강남구청
셋 중에 하나만 골라 YES or YES?
현재의 논현동을 하늘에서 보면 언덕을 따라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형태입니다.
그런데 깊숙이 들어가 보면 사정이 좀 다릅니다. 블록마다 거주환경이 상당히 다르거든요.
비슷한 동네인 청담·삼성동과 함께 논현동 역시 강남개발 후 20~30년이 흐르는 동안 대로변은 상가들로 채워졌지만(가구거리), 안쪽 블록은 토지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3가지 정도로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논현동 항공사진
1. 그대로 둔다
주로 언덕 높은 곳이나 대형 단독주택이 밀집한 곳에 해당합니다.
이 지역은 한두 번 집을 대수선 또는 신축하며 ‘그들만의 마을’을 형성하고, 작은 부촌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학동공원 동쪽입니다.
학동공원 인근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2. 모아타운(?)
요즘 말하는 모아타운이 아니고, 여러 필지를 묶어 소규모 빌라나 아파트로 재개발한 것을 말합니다.
1990년대 이후 논현동이 교통도 편리하고 프라이버시 보장면에서도 우수하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최고급 빌라들이 상당수 자리잡았습니다. 학동공원 주변과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뒤편에 가보면 마치 성(城)처럼 담장을 쌓은 빌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인근 아펠바움 / 사진=신조엠앤디
3. 자체 재개발
규모가 있는 단독주택의 경우 낡거나 자녀들이 분가해 더 이상 큰 집이 필요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소유자가 직접 집을 헐고 그 자리에 빌라나 상가주택을 짓거나, 건축업자에게 매도합니다. 그럼 한 채가 8채 10채가 되는 마법의 주문을 걸 수 있습니다. 논현동 대부분 지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별다른 특징 없는 원룸촌
학동공원은 왜 부촌이 되었을까?
자 그럼 여기서 ‘다 고만고만한데 왜 학동공원 주변이 부촌으로 발전했다’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학동공원 부근은 원래 용오봉이라는 낮은 산이었습니다. 관악산 줄기의 끝으로, 멀리서 보면 용이 꿈틀대며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었답니다. 지금은 산보다는 언덕의 모습이지만, 상당한 경사를 직접 올라가보면 아주 등산하는 기분이 절로 나지요.
공원 내부는 가장 높은 지대라 그런지 1976년 대공포 부대가 주둔해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 되었고, 지금도 학동공원 일부에는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파한색이 학동공원, 회색이 짙을수록 높은 지대
이 말은 즉, 학동공원 주변이 상업지보다는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사람들의 주택이 들어서기 좋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강남 한복판이라 신사 압구정 강남역은 물론 경부고속도로나 올림픽대로를 이용하기도 아주 편리합니다.
그래서 현재 이곳엔 정재계·연예계 인사들의 저택과 함께 연예기획사와 콘텐츠 제작사들의 사옥들이 대거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재석이 매수해 큰 관심을 끈 브라이튼N40도 바로 학동공원 남쪽에 있던 골프연습장을 개발한 아파트입니다.
브라이튼N40 개발 전후 모습
논현동, 이 아파트는 꼭 살펴보자
논현동에는 500세대 아파트가 단 2곳밖에 없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네요~^^)
1. 논현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
앞서 강남에서 처음 등장한 아파트가 1971년 영동공무원아파트라고 설명했습니다.
위치를 볼까요.
요즘은 40년 된 아파트도 버틸 만하지만, 그보다 10년 전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연히 재건축이 되든 다른 용도로 쓰이든 했을 텐데…
영동공무원아파트는 1994년 강남에서 최초로 13층 고층아파트로 재건축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후 1997년 7월 13층 8동의 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로 재건축되었고요.
재건축 이후 논현신동아파밀리에는 ‘연예인 아파트’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경규가 오래 거주했고 김민종, 김혜수, 김희애, 이승연, 전진, 한혜진 등도 이 아파트를 거쳐갔다고 합니다.
영동공무원아파트 재건축 전후
28년차로 이제 두 번째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업성이 아예 없지 않고 (학교 빼고)입지가 워낙 좋은 만큼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면 기대해볼만 할 것 같습니다.
전용 84㎡가 최근 18~20억원에 거래됐는데, (이유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강남 한복판 치고 이 정도 시세는 눈이 똥그래지는데요.
(7월 29일 경매 진행되는 42평 물건이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2. 동현아파트
1985년 준공돼 41년차를 맞은 동현아파트는 본래 두산건설 직원을 위해 본사 뒤편에 지은 것으로, 모두 중대형 평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강남에서 언주로를 타고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을 넘어 성수대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어라? 여기 왜 아파트단지가 있지? 위치 하나는 끝네주네…’ 하는 곳이죠.
동현아파트는 재건축 이슈를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압구정, 청담동 한강변 아파트를 제외하고 테북(테헤란로 북쪽)에서 가장 크고 유력한 재건축단지입니다. 세대당 평균 대지지분이 19평이니 사업성도 아주 좋습니다.
학교를 품고 있지는 않지만 명문 영동고가 지척이고, 압구정로데오나 청담 신사 테헤란로 중심업무지구 접근성도 아주 좋습니다.
풍문으로 들어보면 주민들이 ‘돈을 좀 더 내도 하이엔드급으로 재건축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은데, 잘 되면 브라이튼N40처럼 럭셔리한 아파트로 환골탈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잘 지어도 너무 잘 지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현재의 논현동을 간단히 3분할해보겠습니다.
좌상단(①)은 ‘고급주택 및 빌라촌’, 좌하단(②)은 ‘먹자상권+가구거리+배후세대’, 우측(③)은 ‘고급빌라+소형아파트+연립+상가주택’이 혼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논현동 하면 ‘강남 유흥상권 종사자들이 거주하는 곳’부터 떠올립니다. 물론 일부 구역은 실제로 그렇고 ‘개미굴’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로변에서 한 두 블록만 깊이 들어가 수박껍질처럼 단단한 편견을 벗은 논현동을 마주하면 달콤한 유혹에 흠뻑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강남의 노른자땅이지만 목적 없이 들어갈 일 없는 곳, 그래서 의외로 부유층이 선호하는 곳. 논현동은 충분히 유재석과 이경규가 (이명박도)선택할만한 동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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