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분파 소재를 찾으려다 보면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는 지명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들어본 동네인데 위치상 그럴 리가 없는…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직접 손발 걷어붙이고 제대로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할 동네는!!!
백마장입니다.🦄
들어봤나 백마장??
빨간 원이 백마장 사거리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백마장 골목
백마장은 현재 산곡동 한복판을 말합니다.
산곡동은 본래 산골짜기 마을이라 뫼끝·산곡이라 불렀고, 군마를 기르면서 마장면이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인 1940년 인천에 편입되며 당시 인천부윤이던 나가이데라오가 지역명을 하구바죠(白馬町-백마정)로 바꿨다고 합니다.
백마장 인근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조병창(무기제작공장)이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미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보급창·의무·공병·통신·항공대까지 주둔시켰습니다. 한 때 미군수지원사령부(ASCOM: Army Service Command)가 주둔해 이곳 이름을 애스컴시티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백마정이 입에 맞게 ‘백마장’이 되었다네요.
해방 직후 부평 전경
주황색 동그라미가 백마장 사거리(산곡역), 빨간색 안이 백마장 골목 / 부평문화원
한때 부평 경제의 핵심이었던 애스컴시티는 1973년 공식 기능을 마치고 해체되었습니다. 일부만 남아 부평역 인근에 있는 캠프마켓이 되었고, 일부는 국군이 인수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마지막에 회군해 모든 관객을 탄식하게 만든 ‘9공수특전단’과 반란에 가담한 5공수특전단 외에 여러 부대가 주둔했고, 일부는 현재도 주둔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백마장
1953년 미군부대 모습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저보다 한 세대 많은 분들은 ‘거기가 거기구나!’ 하실 텐데…
맞습니다. 옛날옛적 서울 터미널에서 인천 방향에 어김없이 적혀있던 그 백마장이 지금 7호선 산곡역 일대, 산곡동입니다.
백마장 사람들 이야기
산곡역 남쪽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길 건너에는 10여개의 바둑판같은 골목이 나옵니다.(지금은 철거됐습니다)
‘골목 전체가 어쩜 이리 똑같이 생겼냐’ 싶은데, 1940년대에 일제 조병창과 조선베아링 등 군수기지에서 일할 노동자들의 숙소로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철거 전 백마장골목 모습 / 부평문화원
철거 전 백마장 골목 모습 / 부평문화원
6~12개의 집을 하나의 기와지붕으로 연결한 전형적인 일제강점기식 사택이었는데, 여인숙이나 하꼬방을 떠올리면 맞습니다. 말이 집이지 달방 또는 수용소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사람이 가장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골목 안에 시장(백마시장)이 형성됐고, 훗날 재건축 과정에서 동네와 최후를 함께한 백마극장을 비롯해 수십년된 맛집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산곡동 주변에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며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아마도 60~70년대 백마장은 인천 동쪽의 핵심 핫플레이스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옛 백마시장
철거 전 백마극장 모습
1980년대 공수부대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90년대 이후에는 소규모 재개발과 추가 아파트 건설을 거치며 백마장은 현재 산곡역 일대를 제외하고 전체가 아파트와 공장으로 채워졌습니다.
5공수, 9공수 옛 주둔지, 빨간색 표시가 백마장 골목
하지만 저렴한 숙소가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가 꾸준했고, 인구밀도도 워낙 높고, 특별한 호재도 없었기에 슬럼화 되어가는 백마장사거리 일대를 개발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022년 백마시장 철거 전 마지막 로드뷰
지하철은 모든 것을 바꾸는 법
7호선 연장과 함께 부천의 중심이 부천역에서 7호선 라인으로 바뀐 것처럼 부평 역시 2021년 7호선 연장계획 발표 이후 일대에 대한 기대가 급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산곡역 주변은 일제강점기에 지어놓은 주택들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낙후됐기에 ‘개발만 된다면’ 단번에 부평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기대와 같이 한 블록씩 아파트로 천지개벽할 때마다 로또청약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부평아이파크
산곡역 초역세권인 부평아이파크의 경우 2017년 청약에서 최고 11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지만, 많은 세대가 줍줍으로 나왔습니다. 천지개벽할 곳이지만 분양가가 높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당시 84㎡의 최고 분양가가 4억3700만원이었는데, 현재는 6억원에 실거래되고 있습니다. 베니아님의 사례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산곡역 주변 입주 5년차 이내 아파트
이외에도 5050세대의 e편한세상부평그랑힐스(2023년), 1623세대의 부평캐슬앤더샵퍼스트(2023년), 799세대의 부평위브더파크(2022년) 1116세대의 부평신일해피트리더루츠(2022년) 등 대단지들이 분양과 입주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해링턴스퀘어 산곡역이 줍줍에?
자, 이제 오늘의 주인공 이야기를 해볼까요.
최근 청약을 마치고, 오늘(16일) 정당계약이 끝나는 해링턴스퀘어산곡역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백마장 지역 핫플레이스를 재개발하는 아파트입니다.
4월 청약을 진행했는데 1·2순위 청약 결과 689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평균 3.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결과를 자세히 보면 특공도 일반공급도 미달된 세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변보다 2억원까지 높은 분양가 때문으로 보입니다.
해링턴스퀘어 산곡역 청약 경쟁률과 주변 30평대 아파트 실거래가
84㎡분양가가 8억500만원~8억5200만원으로 주변 시세대비 상당히 높습니다. 인근 신축의 동일평수가 6억 중반, 부평역 인근 신축이 6억 후반에 실거래되는 것에 비해 확실히 높은 편입니다.
물론 해링턴스퀘어 산곡역이 7호선 초역세권, 2475세대 대단지, 초품아 등 산곡·청천동의 대장입지가 분명하지만 이 분양가라면 심도 있게 지역분석을 한 뒤에 무순위 청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산곡역 주변이 깔끔한 거대 아파트단지로 거듭나고 있지만, 주위에 재건축이 어려운 노후단지들이 많고(그리고 저렴하고), 향후 GTX-B 노선이 개통하면 7호선 개통 시기와 같이 부평역으로 중심입지가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참고하며 임장해야 합니다.
수익은 추억을 먹고 자란다, 여긴 좀 많이
1960년 백마장 사거리
재건축 완료된 산곡역 인근 아파트
수익은 추억을 먹고 자랍니다.
산곡동과 백마장골목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재개발지역보다 훨씬 오랜, 그리고 아픈 역사를 지우고 이제는 평범한 꼬마신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군마를 키우는 곳이었다가, 일본군의 무기를 만들던 곳이었다가, 미군 주둔지였다가, 한국군의 주둔지였던… 오랜 세월의 풍파는 이제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추억이 사라진 만큼 수익은 오를 것입니다. 그 수익이 추억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큼이기를 바랍니다.
안 그러면 그 동네가 보내온 세월이 너무 아깝잖아요. 서럽기도 하고.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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