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깁니다 X 2배 깁니다.
여유로운 시간에 읽어보세요.
눈여겨봤던 동네 52평 아파트를 낙찰받았습니다.
나 아내 딸 세 식구지만, 유년시절 하꼬방 셋집살이 하던 기억 때문에 옷방도 공부방도 손님방도 내방도 있는 근사한 큰집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지금처럼 20~30평대 쏠림이 있고, 대형평형의 시세하락으로 가격 메리트가 있는 이 즈음이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았습니다.
카페에 낙찰소식을 올리니 “명도 잘 하시고 좋은 수익률 올리세요”라고 회원들의 격려와 응원이 물밀 듯 몰려와 힘이 나지만, 그렇다고 모두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초보자의 아주 현실적인 명도 이야기가 여러분께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시작은 차분하게
차분히 경매 프로세스를 점검해볼까요.
입찰-낙찰-매각허가(2주)-대금납부(3~4주)-인도명령(1주)-합의서-강제집행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지금은 매각허가결정 및 확정단계입니다.
「송사무장의 경매의 기술」 책을 다시 읽고 (세번 반복했습니다) 카페에서 명도 경험담을 발췌해 반복 읽어봤습니다.
채무자 상황을 알기위해 법원 서류열람도 했습니다.
법원 경매계에서 안내에 따라 관련서류를 넘겨받고 한장씩 넘기면서 보니 주민등록 등본이 있네요. 23살 결혼했는데 부인은 5살 연상, 자녀는 딸만 둘(22살, 중3)입니다.
여신정보조회라는 문서에 채무자 전화번호가 기입된 것을 찾아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나리오를 짜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막내가 중3이라… 저도 딸아이 키워봐서 아는데 요맘때 이성을 알아 화장하고 치장하며 친구를 가장 좋아하는 사춘기입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일단 우편함에 대락젹인 일정과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가보니 그대로더군요. 집에는 불이 켜져 있는데… 하긴 저 같아도 우편함을 쳐다보기 싫을 것 같습니다.
집 앞에서 휴대폰으로 내용을 요약한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무반응입니다.
문득 「송사무장의 경매의 기술」 에서 봤던 방 하나 짐만 빼고 이사비 달라던 요상한 채무자 내용이 슬슬 밀려옵니다.
매각결정 당일 업무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채무자입니다.
아무래도 법원에서 관련서류를 열람해 저에 대한 신상을 조사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즉 저의 신상을 두고 상대가 작전을 짤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은근히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직장인이냐’ 등의 간단한 질문을 한 뒤 자신이 가진 정보와 맞춰 대응방법을 찾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심지어 3자 화법을 제가 아니라 채무자가 씁니다.
일단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하고, 반드시 피력해야 할 점을 정리했습니다.
피력1 : 투자목적설명
나는 투자용으로 매수했다. 수원에 지인이 1억, 내가 2억 정도 부담했다. 현재 내가 보유중인 주택도 현금이 없어 내놓았고, 보증금 외 지인의 현금으로 진행하고 있기에 빠른 이사를 원한다
피력2 : 당근과 징벌
소유권이전과 동시에 명도해주면 150만원을 이사비로 주겠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명도일은 6월 말이다.(소유권 이전 후 약 20일 정도) 단, 사정 요구시 딸이 중3인 만큼 여럼방학까지 기다려줄 수도 있다.
당신이 점유를 해제하지 않거나 위약을 하면 강제집행할 수밖에 없다.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VS점유자1
점유자가 멀리서 다가옵니다. 한 손에 상의를 든 나시 츄리닝을 입었네요. 앞배가 좀 나온 전형적인 40대 중반 몸매입니다.
그는 아버님의 사업이 어려워져 보증을 섰다가 잘못돼 자산이 넘어가는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반전세로 이사 계획중이고, 딸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했고, 대출을 받으려고 준비중이랍니다.
지금은 돈이 없어 9월 초까지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데 ‘오다가다 만날 텐데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저는 ‘6월 말까지는 기다리겠지만 금융비용이 상당하다. 입주하려고 살고 있는 집도 내놓은 상태라 시기가 늦으면 매도+이주 등 아주 어려워진다. 가족들과 잘 상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차 만남에서는 잔금기일 이전 명도 vs 매각확정 3개월 후 명도의 갭차이를 확인했습니다.
이후 통화를 두 번 했습니다.
1차 : 8월까지 이사하는 대신 금융비용에 대한 이자 50%는 당신이 내라.(우리측 주장)
2차 : 부담스럽다. 매각대금납부만 지연시키면 서로 피해가 크지 않으니 항고하라고 부인이 그랬다.(컨설팅업체와 협의한 것 같습니다)
vs관리사무소
입찰 전 확인한 체납관리비는 한달치 26만원이었는데, 3개월 연체되어 76만원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장기 체납되어 단전/단수를 통해 거의 1년치를 한번에 받았고, 현재 관리소에서 관리비가 체납되면 최고후 위약벌로 해당세대에 단전의뢰 및 단수조치를 직접 행한다 합니다.
7월10일까지 최고하였기 때문에 기다린 후 단전이든 단수든 취한다고 합니다.
제가 강제하지 않아도 되어 다소 마음이 놓였지만, 이대로 가면 최소 4개월치가 부담이 되어 소유권이전일로 부터 공용/전용을 논의해야 하고, 서로의 부담을 덜기위해 채무자/관리소/낙찰자가 힘겨루기를 해야 하므로 일단 내용증명을 한통 보내기로 했습니다.
– 관리소는 사용자로부터 관리비를 징수할 책임이 있다.
– 관리비가 승계되면 공용부분에 한하며, 연체료를 승계되지 않는다.
– 관리소는 3개월 체납된 것을 이유로 단전, 단수에 대한 최고를 하고, 납부하지 않을시 규약에 따른 조치를 해라.
「송사무장의 실전경매」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vs 점유자2
인도명령을 신청해 하루만에 인용받았습니다.
채무자는 의도적인 송달 저항 없이 송달받아 강제집행을 위한 준비를 끝냈습니다. 이제 신청서 접수와 함께 돈만 내면 계고-집행을 거쳐 한두 달 안에 온전히 저의 것으로 됩니다.
이제 원만한 협의에 의한 명도냐, 강제집행이냐 결정해야 합니다.
일단 채무자는 신용불량으로 대출이 불가해 7월 10일까지만 기다려주면 자녀명의로 신청한 대출의 윤곽이 잡힌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뒤 점유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채무자 : 관리소에 내용증명 보내고 전화해서 단수시키라 했어요?
나 : 내용증명 보낸 것은 맞는데 규약에 따라 적법하게 조치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증명 보낸후 단수하라고 전화한적 없어요.
채무자 : 알았어요(화가 좀 난 것 같습니다)
뒤이어 연락한 채무자는 제게 이사비 300만원을 먼저 달랍니다. 딸 명의로 신청한 대출금이 적어 보증금이 부족하답니다.
저도 300만원 정도 이사비를 생각했지만, 사람이 돈 받기 전/후가 틀려지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입니다. 카페에서 보면 다들 절대 주지 말라고 하는데, 막상 또 닥치니 고민입니다.
경험담을 보면 이 같은 사례는 종종 있고 절대 주지 말라 하였는데 저에게 닥치니 또 고민입니다.
행크 카페에 달린 고수의 답변
채무자와 커피숍에서 만났던 순간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혼다를 타고 사라진 채무자의 진실성이 의심스럽지만, 같이 왔던 와이프의 떨리는 목소리가 뇌리에 남습니다.
‘관리비를 왜 안 내냐?’는 말에 ‘물이 안 나와 딸이 씻지 못해 엄마~하고 찾을 때 심장이 찢어졌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여동생에게 300만원 빌려 갚았다. 지금도 좀 어려워 갚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결국 채무자와 ‘300만원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차용증(부인 연대보증)을 작성한 뒤 선지급하고, 지정일에 이사하면 합의금으로 대체한다’고 합의서를 작성하고 선금을 보냈습니다.
이후 관리사무소가 단전을 했나 봅니다. 연락이 와 ‘씻게 좀 해달라’고 하는데, 소장님과 통화해 일단 점유자가 20만원을 선금으로 내고 단수는 풀었습니다.
이 협상과정에서 제가 실수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인근에 살고 있어 숨길게 뭐가 있나 싶어 직장을 알려주었는데 진행 중 약속을 안 지켜 강제집행 이야기를 꺼냈더니 점유자가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00님, 회사에서 뵙지 않기를 진정 바랍니다. 세상은 넓지만 너무 좁기도 하거든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참 많은 것을 고민했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경매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또 느낍니다.
강제집행할 경우 회사 앞에서 모든 것을 잃은 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 그걸 보는 나의 모습…
할 수 없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최소화하면서 막자고 결정했고, 합의금도 선지불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다시 체납관리비라는 복병을 만났으니 난감할 수밖에요.
다짐해봅니다.
앞으로는 3자화법을 활용하고, 절대 개인 신상 노출은 하면 안된다고요.
처음으로 내집 방문하기
체납관리비로 인한 단수조치로 해결(?)을 위한 소유자의 출입을 허락받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단수되고, 가스도 차단된 상태에서 집안이 어떨지…
벽지는 누렇고, 방마다 치우지 않은 잡동사니들, 묘하게 느껴지는 냄새, 베란다엔 개똥, 찢어진 블라인드, 여학생들 방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지저분함, 수입이 좋았을 때 사 놓았을 것 같은 고급가구들이며 장식품까지…
아니나다를까 점유자는 본인 체납관리비를 대신 내달랍니다. 확인해보니 이사일까지 연체비 135만원 – 납부50만원 – 선수관리비 26만원 = 59만원을 내야 합니다.
공용부분 체납관리비를 가지고 관리소장과 협의했지만
“아파트의 출구는 하나다.”
“단수조치를 하면 더 받아낼 수 있다.”
“이런 것을 정으로 해결하려면 안 된다”
“지금껏 우리 아파트에 5건의 경매가 진행되었지만 다 받았다”고 합니다.
설사 제가 안낸다 해도 채무자 이사차량을 못나가게 하면…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나마 집 평수가 커서 그런지 베란다를 트지 않아도 방들이 충분히 컸고, 곰팡이 문제는 하나도 없어 다행입니다. 방과 베란다를 독일산 강화마루로 시공했다 하니 위안이 됩니다.
vs점유자(2-1)
앞서 신상노출과 빠른 명도를 이유료 이사비를 선지급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약점이 있습니다.
1. 약속을 안 지키는 채무자에게 이사를 하겠다는 합의각서가 강제책이 될 수 있을까?
2, 아파트와 관련된 공과금 해결 없이 이사비 선지급을 해도 되는가?
통장에서 이체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을 믿어야 하나? 의문이었으나 이사할 부동산도 확인하고, 가계약금 일부를 지불한 것을 파악한 이상 주저할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당시 체납된 관리비의 경우 3개월을 초과한 상태에서 경매주택이 낙찰되고 낙찰자로 부터 받은 내용증명이 “소장님 당신이 받으세요 “라고 쓰여 있으니 관리소장은 단수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채무자는 선지급된 이사비 3백중 50만원의 관리비를 납부할테니 관리비 일부(약 70만원)를 인수해달라 하여 결국 착한 제가 인수하고 이사를 나가게 했습니다.
만약 폭염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내지 않고 이사했을 것 같습니다. 한여름 단수조치는 효과만점입니다.
추가비용인수라는 함정에는 빠졌지만 만약 강제집행을 했으면 계고및 집행비용+보관비용+유체동산경매비용+체납관리비(공용)+감정악화+시간소비라는 부담을 안았을 것입니다.
또한 관리비 일부라도 납부하게 만들어 결국 공용부분 인수한 금액과 비슷한 계산이 가능하기도 했고요.
아! 이사 후 확인한 가스비만 420만원이 연체되어 있었다는 것은 비밀이었네요. (경매 낙찰자는 소유권이전 후 사용분만 납부합니다. 방법은 카페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vs채무자3 ‘이젠 안녕’
아파트 관리사무소로부터 토요일 아침 전화가 왔습니다.
말고 안하고 예정된 이삿날 이틀 전에 이삿짐차를 불렀답니다.
11시경 현장을 확인하려고 가봤더니 사다리차가 부지런히 짐을 내리고 있습니다.
일단 잘 가는데 자극하지 말고 ‘안녕히 가시라, 건강하시라’ 문자를 적는데 채무자 와이프가 탄 혼다 승용차가 훅~ 지나갑니다. 바로 채무자에게서 전화가 왔네요.
채무자 : 아니 여기 왜 오셨어요?
나 : (연락도 안하고 도망가면서~) 관리소에서 이사한다고 연락와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채무자 : 구경하지 마시고 가세요. 뭐 구경할거 있다고~ 이사 끝나면 비밀번호 알려드릴게요.
이삿짐차가 빠져나간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문이 그냥 열려있네요.
아파트를 들어선 순간 이런 난리도 없습니다.
분리수거 일부 안 해서 미안하다고, 내일 좀 버려달라 해서 정리는 했나 했는데 방마다 쓰레기가~ 오염과~ 벗겨짐과~ 음식물~ 기름찌꺼기~ 배수구~
이런 곳에서 부모와 중3, 22살 여성 자녀가 살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청소 용역을 불러 처리할 수밖에 없었네요.
이제부터 진짜 우리집
집에 제 옷을 입혀 새집처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총 680만원 들었습니다.
이렇게 30평대 집에서 52평으로 수리 후 이사를 마쳤습니다.
정리하느라 며칠 고생하고 거실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습니다.
아~ 이곳이 이제 내집이구나.
딸 방에 설치해준 에어컨으로 모처럼 기숙학교에서 집에 온 딸(고3)이 시원하게 자소서 준비하는 것을 보니 보람도 느껴집니다.
더운 며칠 문밖을 나오질 않네요.!!
그래 마음 붙이고 몇 년 행복하게 살아보자.
그리고 이 집 팔아 두채 사야지. 월세 나오는 걸로다가~^^
낙찰과정에서 얻은 주요TIP
1. 대형 평수라고 명도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약점 잡힐 것을 노출하면 안됩니다.
2. 가스비 및 공과금과 관리비 체납상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악성이라면 채무자 거주 부동산은 초보자가 입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장기간 상황이 어려워진 뒤 경매가 진행되므로 관리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3. 확장된 베란다는 선호하지 않는데, 확장되었다면 나무로 된 바닥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비 또는 누수로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4. 인간은 집착에서 벗어날 때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집착을 버리면 사적인 욕망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위 경험담은 2013년 게재된 ‘산다는것’님의
‘명도 경험담 여러편’을 모아 재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