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리먼사태로 인해 보유하던 물건의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비축된 현금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죠.

새벽부터 지방으로 임장하고 입찰하러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2010년 11월 충남 연기군 전의면 아파트를 낙찰받은 바 있어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는데, 2012년 공매 낙찰건 중 한 가구의 재공매가 진행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최저가는 4600만원 정도였습니다.

입찰 마감일 다른 지역에서 점유이전가처분 문제로 집행관과 만나기로 약속돼 있었기에 동생을 시켜 4618만원에 낙찰 받았습니다.

재경매된 사유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아시아신탁과 할아버지께서 1998년에 전세 2500만원에 계약하고 입주하셨으나,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문제는 할머니가 본처가 아니라 호적에 올리지 못한 후처로, 사실혼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할머니께서 2500만원의 보증금을 수령할 자격이 없는 입장이여서 앞선 낙찰자는 명도하기 어려워 보증금을 포기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저는 보정명령으로 많은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어 일단 명도 소송을 진행할 테니 할머니께 놀라지 마시라고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10여년 전 할아버지 초상을 치르면서 전처소생인 5남매에게 상속 포기를 요청하셨으나, 아들만 포기각서를 써주고 딸들은 말 한마디 없이 가버렸다고 원망하셨습니다. 몹시 서운하신 듯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우리가 할 일은 따님들께 상속포기를 요청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설상 우리가 할머니께 보증금을 내드린들 10여년씩 연락도 없이 살아왔는데 보증금 내놓으라고 할 일도 없을 것 같지만, 사람 일이라는게 그렇지 않으니 보정명령으로 연락 두절된 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월곡동에 사는 첫째 딸에게 갔더니 지하 빌라였습니다. 벨을 누르니 남자가 “없어요” 하기에 더 묻지 않고 나왔습니다.

2012년은 가뜩이나 서울 경기가 말이 아니었고 이 시간에 남자가 반지하 집에 있다면 실업자 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망치듯 나와서 동생하고 한바탕 웃고…

둘째 딸 집에 갔더니 번듯한 근린상가로 최근에 건축한 듯 보였고, 1층엔 이미 세가 들어왔길래 성함을 대니 그 건물 주인이랍니다,

올라가서 만나보니 그 할머니로 인해 고통받았던 이야기며 지금은 5남매가 연락 없이 지내는 등…

그래도 어쩝니까. 할머니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할아버지 산소 관리나 제사도 다 하고 계시니 상속포기에 동의해달라고 읍소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상속포기 하는 조건으로 산소관리와 제사나 잊지 말고 챙겨달라고 부탁하기에 할머니께 전해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때가 어디 있냐며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갔다고 하셨습니다.

이삿날 이사비 100만원 중 25만원을 법무비라며 주시기에 감사히 받아 도배와 등기비용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솜씨 좋은 할머니가 해주신 찰밥과 나물은 어찌나 맛있던지 양껏 먹었죠.

그리고…그곳이 세종시가 되었죠.

3층이라 층도 낮고, 세입자가 마침 매입하겠다고 해서 2014년 5월 7230만원에 매도해 세전 26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위 경험담은 다음 ‘행복재테크’ 카페
2015년 1월 게재된 ‘naralang’님의
‘임차인인 할머니께서 되레 수고비를 주셨다’를 재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