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신설동 고려학원 원정을 다니던 때, 친구들이 북쪽 산을 가리키며 ‘저 위에 올라가면 서울이 한눈에 보인다’고 하더군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냅다 뛰어올라갔습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진짜 낡은 동네를 헤매다 보니 봉제공장도, 시골틱한 점빵도 보이고, 그렇게 한참 걸려 작은 동산 꼭대기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정자 위에서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이런…느낌???
그때는 황학동 롯데캐슬베네치아, 숭인동 롯데캐슬천지인이 없었기에 남산과 멀리 한강변까지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곳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매일같이 영월이 있는 동쪽을 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는 동망봉(동망정). 지금의 숭인동(+창신동)이었습니다.
창신동(위)과 숭인동(아래)
부자 동네에서 도시빈민 거주지로
창신동과 숭인동은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이었다가 ‘섞어서 다시 분리하는’ 방식으로 나뉜 동네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서로 앞뒤글자를 따서 동네 이름을 만들었지요. (이야기는 창신동으로 통일하겠습니다)
19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이곳은 고관대작과 부자들의 집 또는 별장, 국궁터로 쓰였습니다. 대왕대비, 은행장, 재벌의 집이 있었다니 말 다했죠.
찾아보니 대한민국 최초의 재벌이자 백남준의 부친 백낙승의 집도 있고, 1920년대 기사에 임종상이라는 친일파 부자의 집은 260여 칸이나 되어 창신궁이라 불렀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지금의 성북동·평창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1930년대 동대문에서 본 창신동(언덕이 동망봉)
그런데 이 잘살던 동네가 1920년대부터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이 도시화되면서 성 안에서 밀려난 이들과 지방에서 유입된 빈민이 성밖(동대문)인 창신동으로 몰려와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낙산의 산비탈, 청계천변 등 주인 없는 땅마다 판자촌이 만들어졌습니다. 동대문시장을 생활터전으로 삼는 도시빈민들에게 이만한 입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1920년대 후반 우시장과 도축장이 동묘 인근으로 옮겨오고, 일제가 낙산에 채석장을 만들어 여기서 캐낸 돌을 한국은행 서울역 조선총독부를 만드는데 쓰기도 했습니다.
1936년 숭인동 우시장 젖소품평회
그렇다면, 일자리+상권+저렴한(무허가)집까지 다 되는데 사람들이 밀려들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해방 및 전쟁 이후 : 공장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이촌향도현상으로 인해 창신동과 숭인동은 낙산 정상까지도 주택이 빽빽하게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중하층 이하였고, 대표적인 직업은 행상, 노점상, 건설노동자였습니다. 집의 절대다수가 판자촌인 달동네로 이때 완전히 굳어진거죠.
이 흐름이 바뀐 것은 1970년대 봉제업이 크게 성장하면서였습니다.
현재 동대문 쪽방촌
1층 점포는 판매, 2·3층은 봉제공장인 평화시장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동대문시장은 의류, 포목 등의 패션 전문 시장으로 특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은 아주 열악했고, 1970년 11월 전태일의 분신으로 인해 동대문시장의 노동환경에 대한 안전점검과 근로기준법 단속이 강화됐습니다.
그래서 이를 피해 공장들이 퍼져나간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옆동네인 창신동이었습니다. 주택 1층이나 연립 지하에 봉제공장을 만들고, 2층부터 사람이 거주하면… 평화시장 시스템과 똑같잖아요.
이렇게 1980년대 이후 창신동은 동네 전체가 마치 하나의 봉제공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이때 나온 노래 중 유명한, 저보다 형님누님은 다 아신다는 천지인의 ‘청계천8가’, 그 청계8가가 숭인동 동남쪽 끝자리입니다.
공장(점포)과 집이 붙어있는 봉제공장 구조
창신동 연립주택 뒤편 빌라들
그것이 바로 2000년대 제가 동망정에서 처음 본 창신동과 숭인동의 모습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창신동
1990년대 중국발 저가 제품이 동대문시장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봉제산업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이 돌아가기는 하지만 ‘먹고는 살 정도’에 불과하고, 서울에 ‘뉴타운 바람’이 불면서 완전히 노후되어버린 창신동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생활환경이 길음, 미아보다 나쁘면 나빴지 나을 것이 없었기에 창신동은 2007년 당연히(?) 뉴타운지역에 선정됐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른 뉴타운과 달리 시장+공장 밀집지역이잖아요. 건물 소유자와 세입자(봉제공장)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해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2010년대 창신동
옛 채석장에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
이후 박원순시장은 창신동을 재개발하는 대신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하고 마을재생사업에 주력했습니다. 특히 봉제마을로 특화시키려고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이 동네의 옛 이야기를 탐험하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지만, 토지나 건물을 소유한 분들에게는 답답하기만 한 흐름 아닐까요.
천지개벽은 가능할까?
현재의 창신동과 숭인동은 1호선 동대문역~신설동역을 통해 남북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해 1호선 남쪽은 시장, 북쪽은 작은 봉제공장+거주지역입니다.
남쪽 동대문부터 보면 패션(신발)상가와 동대문시장 상인(외국인)들을 겨냥한 오래된 숙박업소 / 문구(도매), 애완동물시장 / 동묘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 앞서 설명한 우시장(1929~1959) 자리가 동묘에서 서쪽으로 길 건너 오디세이학교와 종로산업정보학교니까 이 상권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지요.
북쪽 동대문부터 보면 창신동은 맛집이 즐비한 창신골목시장과 네팔음식거리 외에는 대부분 연립주택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어 한번 들어갔다간 못 나올 수 있습니다.
지하철 6호선을 경계로 동쪽에 있는 숭인동은 동망정 방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동네 깊숙이 들어갈 일이 없는 지역입니다. 저도 한두번 길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창신동 숭인동 주요 아파트 시세
주요 아파트로는 동묘앞역 인근 두산아파트, 롯데캐슬천지인, 종로청계힐스테이트가 있습니다. 모두 가성비로 따지자면 확실히 메리트 있어 보이는 아파트입니다.
1호선 라인 아파트는 ‘동묘시장’이라는 변수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나, 광화문 종로 직주근접과 저렴한 물가만 생각하면 서울 도심에서 이만한 곳 찾기 어렵습니다.
창신역 역세권으로 창신쌍용, 종로센트레빌이 있습니다.
창신역 인근 아파트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세 대비 직주근접과 생활환경 면에서 이런 집을 찾기 어렵다고 할 만큼 괜찮은 편입니다.
아니 근데 두 동네 모두 초등학교만 있고 중·고등학교는 없네???
학교를 다른 동네로 다녀야 한다는게… 이게 집값에는 가장 무시무시한 조건이잖아요!!!
재개발만 되면…20년째 도돌이표
창신동 숭인동 재개발 추진구역 / 자료=리치고
창신동23·숭인동56 일대의 신속통합기획안 투시도
서울시대표소통포털 – 내 손안에 서울
mediahub.seoul.go.kr
창신1~4구역 통합재개발로 정비계획 변경 추진 기존 계획으로 재개발 추진하던 주민 반발 “사업성 떨어지고 재산 손실 불가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남측 일대를 재개발하는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구역을
n.news.naver.com
현재 창신동과 숭인동 대부분의 지역이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을 다 설명하자면 10페이지를 써도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현재 준비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2023년 신통기획으로 묶여 일부는 사업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그러려면 벌써 했겠지’ 싶기도 하고. 말하는 사람마다 이야기가 다르기도 하고.
그래도…언젠가…되기만 하면 엄청난 입지가 될 지역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창신동과 숭인동은 재개발 추진구역 중 도심(광화문·종로)와 가장 인접하고, 규모면에서도 엄청나다는 점에서 꾸준히 임장하며 정보를 모으다 보면 분명 보물과도 같은 물건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동묘 앞에서 본 창신동, 숭인동. 동묘 뒤편 정자가 동망정
이번 주말 임장지를 정해두지 않았다면 창신동과 숭인동 옛날여행 한번 해보는건 어떨까요.
자녀에게 옛 동대문시장의 영광도 설명해주고, 가수 김광석이 살았던 집도 보고, 가수 배호와 화가 박수근 집터도 보고, 백남준기념관도 가보고, 동망정에서 정순왕후처럼 서울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절벽골목 카페에서 운치도 느껴보고…
그 유명한 낙산냉면부터 맛도 괜찮은데 저렴한 음식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진짜 어메이징 해요.
오래된 동네는 그만큼 볼 곳이 많잖아요?? (그래서 저도 숭인동 좀 살았,,,흠흠~)
혹시 또 아나요. 봉제공장에서 자산이 이불솜 터지듯 터져버릴지^^
‘여기어때’ 창신동, 숭인동편은
「월급쟁이 강남 내집 마련하기」와 함께합니다.
1800만원으로 시작하는 강.남.입.성 프로젝트 출간 모든 사람들은 강남에 집을 갖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강남에 집을 살 수는 …
ca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