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왕시에 살던 초딩알리미에게도 신당동은 익숙한 동네였습니다.

TV만 틀면 마복림 할머니가 나와 “며느리도 몰라~” 하시는데, 그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는지 정말정말 궁금했거든요. 엄마한테 가보자고 졸랐다가 ‘거기가 어딘 줄 아냐’며 구박만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며느리도 몰라? 이젠 저도 알아요 여기 싹 다 천지개벽하는거 [여기어때]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뒤, 출장차 신당역을 찾았는데 함께 간 선배가 ‘여기가 마복림 떡복이집이 있는 곳’이랍니다.

“오잉? 아니 그럼 점심 먹었어도 가야죠” 하고 찾아가 감격스러워하며 라면과 쫄면을 후루룩 털어넣었는데!!!

아… 이거……

여기 전체가 공동묘지였다고?

현재의 신당동을 신당역 주변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넓게 보자면 예부터 신당동은 주방거리가 있는 황학동, 동대문 패션타운 흥인동을 비롯해 청구동, 동화동, 약수동까지 넓은 주거지역을 포함한 큰 동네였습니다.

앞서 도성 서쪽 아현동을 설명하며 시구문(도성에서 사망한 시신이 나가는 문)과 이에 따른 공동묘지, 빈민구제기관인 활인서가 있던 자리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도성 동쪽 광희문과 맞닿은 신당동도 이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하자면 신당동은 무녀들의 신당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귀신 신(神)자를 쓴 ‘神堂洞’이라 불렀죠. 이는 갑오개혁 이후 新堂으로 바뀌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신당동

기록을 보면 1901년 일본 영사가 광희문 밖 솔밭 70여 평을 화장장과 묘지 부지로 확보하고, 1902년 화장장을 완공했다고 합니다.

20년 뒤 지도에는 신당동을 중심으로 한 화장장과 일본인, 조선인 공동묘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서울 도성 외곽 공동묘지

공동묘지+신당+빈민촌이었던 신당동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 중기부터였다고 봐야 합니다. 일제가 한양도성 남쪽 성곽을 헐어내면서 성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덕분에 장충동과 신당동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고, 공동묘지는 금호동이나 미아리, 일본인 화장터와 묘지는 홍제동으로 이전했습니다.

그럼 3만평이나 되었다는 이 자리는 주택으로 개발해야겠지요. 일제는 이곳에 토막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구획을 나눈 뒤 ‘문화촌’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을 지었습니다.

문화촌 주택의 형태는 지금도 극소수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군사반란 전에 살던 ‘신당동박정희대통령가옥’입니다.



1960년대 신당동 박정희 가옥과 육영수 여사가 영사 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현재 외부 공개되고 있는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

움집이나 다름없는 토막집이라도 짓도 살았던 빈민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주변 구릉지를 개간해 다시 자리를 잡았답니다.

그래서 지금의 신당동 지도를 보면 반듯하게 도로가 정비된 구역과 구불구불한 언덕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비된 구역과 아닌 구역의 차이

서울 3대 시장, 이름하여 ‘서울중앙시장’
비록 1920년대지만 ‘3만평의 토지에 새로운 주택들을 건설한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언덕에는 토막집을 짓고 사는 빈민들이 가득하다’

이것만으로도 성남 분당, 부천 중동신도시를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이렇게 배후세대가 풍부한 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면 필수적으로 모란오일장이나 원미시장(상동시장)과 같은 상권(시장)이 확장되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신당역 주변은 본격적인 시장이 들어서기 전에도 시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주변에 군사시설이 많아 대장간만 160개 정도가 있었고, 현대 정주영 회장이 점원으로 취업해 인수한 쌀가게도 바로 이곳에 있었습니다.


서울 중앙시장(빨간색 표시가 메인골목)

서울중앙시장

현대 정주영 회장이 처음 쌀 상회를 시작한 싸전거리

신당동 대장간 / 사진=서울역사박물관

해방 직후 성동시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시장은 1960년대에는 서울시에서 거래되는 양곡의 70%를 담당하며 ‘서울 3대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가구거리, 자개거리, 황학동 주방거리까지 연결돼 남대문시장 못지않은 크기로 불어나게 되죠.

그래서일까요.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광희문 동쪽 골목은 사람들이 열심히 모여 산다고 ‘개미골목’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떡볶이의 발상지+봉제공장

이쯤 되면 떡볶이 골목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지요.

마복림 할머니를 ‘신당동 떢복이 원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사실 이분이 신당동 뿐만 아니라 애당초 고추장 떡볶이의 창시자입니다.

중국집에서 떡 요리를 먹다가 ‘칼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에서 시작해 1953년 야채+춘장+고추장을 섞어 볶는 형태의 떡볶이를 만들어 리어카 장사를 시작한 것이 시작인데요.

이후 하천이 복개되고 1970년대 가스가 보급되면서 지금의 즉석떡볶이로 형태가 바뀌었고, 1980년대 주변에 떡볶이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신당동 떡볶이골목은 타운화 되었습니다.


사진=서울관광재단

떡볶이 골목에서 안쪽(동쪽)으로 깊이 들어가면(신당 10구역) 지금도 7080스타일의 빨간벽돌집들로 가득합니다.

창신동편에서 설명해드린 것과 같이 동대문시장의 배후, 1층은 봉제공장 2층 위로는 주거하는 형태의 상가주택들이 언덕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 점집들도 자리잡고 있고요.


2010년대 초반 처음 방문한 신당동의 첫 이미지

처음 방문한 십수년 전에도 ‘여기가 서울, 그것도 종로랑 10분 거리 맞아?’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로 출장가는 길이면 가끔 신당역에서 동대문역사공원역까지 걷고는 했는데 재봉소리, 오토바이 소리, 아이들 소리가 섞여 복잡한 머리를 식히곤 했었지요.

허나…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수익이 추억을 빼앗아갈, 재개발 시점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재개발만 되면, 재개발만 되면!!
재개발구역으로 신당동을 눈여겨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신당동 일대는 1990년대 이전부터 계속 재개발이 추진됐고, 아주 일부에 불과하지만 새 아파트가 된 지역도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아파트가 남산타운입니다.

남산타운은 1990년대 재개발돼 2002년에 준공된 5,152세대 대단지 아파트입니다.

원래는 말 그대로 달동네였는데, 80년대 이전 세대라면 모두 알고 있을 MBC 드라마 촬영지 중 하나였습니다.


드라마 ‘서울의 달’

지인 댁에서 하루 신세지게 되어 자고 있어나 거실에 나갔더니 옥수동, 한강은 물론 강남의 끝인 대모산까지 눈에 들어오는데… 그 베란다뷰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학군과 경사가 너무 심해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한강뷰가 나오는 RR이라면 누구나 탐낼 수밖에 없는 아파트입니다.

현재 준공 20년이 좀 넘어 재건축을 논하기엔 빠르고 계속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게 여러 문제가 겹쳐서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신당동은 1990년대부터 계속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는 남산타운처럼 되고, 일부는 여전하지요.

일부 구역은 10년 15년이 흘러도 되냐마냐 하고 있는데, 아래 표 중에서 신당 8~10구역 경우 2010년 기사에서도 정비구역 지정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6,7,11구역은 대부분 10년도 전에 재개발이 끝나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재개발도 어떤 지역을 택하는지에 따라 희비가 아주 많이 엇갈린다는 게 눈에 쏙 들어옵니다.

옛 이야기는 그렇고,

현재 진행 중인 재개발구역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내고 있는 신당8구역입니다. (빠르다니까 좀 어색하긴 하네요)



2025년 3월 로드뷰

오티에르 어반더스321 투시도

지하철 5·6호선 청구역 초역세권으로 6월 30일까지가 철거기간이었습니다. 포스코건설이 맡아 가칭 ‘오티에르 어반더스321’이라고 하는데… (어반더스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하철 2개 노선 초역세권에 초품아, 광화문까지 10분(지하철 4정거장), 인근 대형시장+대형마트까지 위치합니다.

현재 맞은편 청구e편한세상이 신당동 대장아파트인데, 많은 분들이 재개발이 끝나면 오티에르 어반더스321이 중구 전체의 대장 또는 대장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당 10구역은 동대문역사공원역과 신당역 사이 남쪽에 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신당 10구역 최근 모습

서울 도심 인근에 ‘정말 재개발해야 하는’ 3곳을 꼽으라면 무조건 들어갈 만큼 낙후된 곳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50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들에 신당+봉제공장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죠.

위에서 ‘다들 열심히 살아서 개미골목이라 부른다’의 그 개미골목도 이곳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미골목 쉼터
만약 이곳에 아파트가 신축만 된다면 지하철 2,4,5,6호선의 역세권은 물론 종로+동대문 직주근접, 중앙시장, 심지어 대형 공연장(충무아트센터)까지 인접합니다.

바로 아래 위치한 신당 13구역이 재개발을 추진 중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 개발까지 마무리되고 단지 사이에 학교까지 들어선다면 중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남가는 환승센터 삼아볼까?
신당동을 처음 걸었던 그날은 그저 재봉 돌아가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어디 평상에 걸터앉아 콜라 한 캔 마시는 기분이 썩 좋았습니다.

그러던 동네가 최근 몇년간 시끌시끌 합니다. 재개발 이야기는 20년 전부터 나왔으니 하지만 이효리가 건물을 매입했다든지, 최근 힙당동으로 뜨고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효리는 좋은 물건을 잘 매입했고, 힙당동 술집들보단 바로 옆 중앙시장에서 술마시는게 싸고 기분도 납니다. 아저씨 나이가 돼서 그런가…)

10여 년이 흘러 행크알리미가 된 이후 만난 신당동에서는 10년, 20년 뒤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서울중앙시장, 신당동떡볶이타운, 광희문, 충무아트센터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80년대에 멈춘 이곳에 자이와 오티에르가 들어서고, 그럼 따따블 역세권에, 가만있자 종로구·중구에 이정도 규모면 경희궁자이랑 비교해야 하나… 강남가기 앞서 신당동에 들러도 될 것 같은데요.

이번 주말엔 계속 등산가자는 어머니를 모시고 등산 대신 신당동에 다녀와볼까 합니다.

과거에 멈춘 골목도 보여드리고, 박정희 가옥도 구경하고, 떡볶이도 (맛만)먹고, 분명히 맛없다고 뭐라 하실 테니 오장동 가서 함흥냉면 먹고, 중앙시장에서 장도 보고…

잠깐! 충무아트홀에서 지금 공연 뭐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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